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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나

내 감정은 누구의 데이터인가?― 정서와 프라이버시의 경계

by 금주의 감사함 2025. 4. 21.

    [ 목차 ]

어느 날 저녁, 감성적인 영화를 본 후 지인과 감상을 나눈 적이 있다.
지인은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정말 울컥했다”는 글과 함께 눈물의 이모지를 남겼고, 나는 그저 좋아요 하나로 반응을 대신했다.

 

그 후 며칠 사이, 내 인터넷 창에 감정적인 영상, 우울한 감성의 음악 추천, 감정을 위로하는 광고가 자주 등장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슬펐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챘을까? 그리고 그 정보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요즘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감정을 드러낸다.
글로, 말로, 사진과 함께, 심지어 얼굴 표정이나 말투, 말하는 속도로도 감정이 표현된다.
하지만 이 모든 표현은 단지 내 마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수집되고 분석되는 대상이 된다.

 

감정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데이터가 되는 순간, 그것은 나와 기술, 그리고 시장의 것이 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드러낸 감정들이 어떻게 데이터가 되는지,
그 데이터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내 감정은 누구의 데이터인가?― 정서와 프라이버시의 경계
내 감정은 누구의 데이터인가?― 정서와 프라이버시의 경계

 

 

 

 

 

 

감정은 어떻게 기술의 데이터가 되는가

 

감정을 읽는 기술, ‘정서 분석’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정보를 넘어 감정을 해석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서 인식 기술’은 음성의 높낮이, 얼굴의 표정, 단어 선택, 문장의 길이, 말하는 리듬 등을 분석해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추정한다.

기업들은 이를 고객 응대, 온라인 상담, 교육 플랫폼, 광고 타겟팅 등에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답답한 목소리로 상담 전화를 하면, 상담사는 그 즉시 ‘위로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분석이 표현된 감정과 실제 감정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사용자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지만,
사람은 종종 진짜 감정을 숨기기도 하고, 반대로 과장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왜곡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감정 프로필은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감정 표현, 그 자체가 상품이 된다

감정 데이터는 단순히 사용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정보가 아니다.
그 자체가 상품의 재료가 된다.
감정이 ‘슬픔’으로 분석되면 위로가 되는 콘텐츠가 추천되고,
‘설렘’으로 해석되면 관련된 상품, 영화, 여행지 정보가 뜬다.

 

즉, 감정은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자극으로 가공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스스로는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지만,
그 감정은 이미 시장 가치로 전환되어 누군가의 수익 구조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감정은 나의 것인가, 시스템의 것인가

한 사람이 밤늦게 스트레스성 쇼핑을 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경우
이 정보는 “심야 소비군”이라는 분류로 기록된다.
이때 사용자는 자신의 소비가 감정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은 이 감정을 포착하고, 그에 맞는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구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서 상태를 시스템이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추천 알고리즘이 작동하며,

결국 사용자 스스로의 정서 경험이 기술에 의해 해석되고 유도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연 이 상황에서, 내 감정은 여전히 나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 감정은 이제 기술의 분석 대상이자 활용 자원이며,
사용자는 감정의 주체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감정 표현에 대한 불안과 회피

과거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해방의 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그 감정이 어떻게 사용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따라붙는다.
따뜻한 위로를 원해 올린 글이, 이내 광고의 타겟으로 활용되고,
나의 취약한 순간이 기업의 ‘타겟 마케팅 전략’에 편입되기도 한다.

 

이는 개인 정보의 보호 문제를 넘어,
인간의 감정이라는 가장 내면적인 세계가 공공화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우리는 단지 개인정보가 아닌, 정서 정보까지 보호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감정을 지키는 권리, 새롭게 고민할 때

 

감정 프라이버시라는 개념

프라이버시 보호는 단지 전화번호나 주소, 위치 정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정서 상태와 감정의 표현까지도 보호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유럽연합에서는 이미 ‘정서 데이터’에 대한 보호 조치를 논의하고 있으며,
감정 인식 기술이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표현이 누군가의 수익이나 통제 수단으로 쓰인다면,
그때부터는 그 감정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감정을 주체적으로 느끼기 위한 연습

기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감정을 표현하기 전 그 표현이 어떤 경로로 흘러갈지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 상태에 대한 기술의 해석을 맹신하지 말고,
플랫폼이 제공하는 감정 기반 정보에 대해 때때로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할 자유뿐 아니라,
표현하지 않을 자유도 갖고 있어야 한다.
감정은 때로는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마저 시스템에 넘겨버릴 필요는 없다.

 

 

 

나의 감정, 나의 주권

 

감정은 인간의 내면에서 가장 순수하면서도 복잡한 영역이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고, 수치화하기 어렵고,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흐름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인간은 인간답다.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고, 감정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감정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 감정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가?
그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어떤 목적에 사용되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나 스스로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표현할 것인지, 간직할 것인지, 드러낼 것인지, 지킬 것인지.
그 선택의 순간에서, 인간은 다시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다.